매력만점 <크랜필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소중했던 순간, 기억에 남는 사람, 아끼는 물건... 그들 기억에 남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1.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광수 최근, 관객들 앞에서 '꿈' 을 연주하려고 준비하던 딱 그 순간이요.
성혁 얼마 전 공연을 보기 위해 어머니와 누나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오셨는데요. 그 시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어요.
수현 최근에 행복한 일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을 쓰자면... 얼마 전 갖게 된 저만의 공간에 퇴근후 지친 다리를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섰는데 노오랗고 밝은 볕이 온 방을 가득 채웠었어요. 방을 가득 채운 볕을 바라보다가 순간 정말 행복해져서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 누워 이른 꿀밤잠을 청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저에겐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2. 가장 기억에 남는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광수 앨범이 나오기 바로 전년도인 2012년, 신림동에서 거주하던 시절인데요. 이것저것 불안하고 걱정도 되고.. 서울, 부산을 오가면서 어느 곳에서도 마음을 편히 두지 못 했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성혁 2009년, 부산에서 혼자 작곡 연습을 하던 시절, 1년간 만든 데모앨범을 서울에 있는 여러 레이블에 보낸적이 있었어요. 6-7곳 정도에 보냈는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더라고요. 실망한 나머지 스트레스성 소화불량과 온갖 위장 질환이 생겨서 고생했었고, 그 때는 정말 음악을 그만 둬야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요.
수현 크랜필드의 1집이 발매되기 전, 오른발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서 첫 시술을 받고 '쩔뚝+어기적'거리며 집으로 가는길이었습니다. 그 시술을 받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을 참지 못했었지만, 발이 빨리 낫지 않으면 활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병원에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 좀 많이 아프더라." 하며 나름 태연하게 통화를 하던 중, 하교길의 한 초등학생이 "엄마아~~~" 하며 뛰어가는데 그 순간 눈물이 와락 터져서 길거리에 혼자 서서 마구 울었던 순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개인적인 사건은 무엇인가요?
광수 군대 전역 후, 갑자스레 집안 형편이 크게 안 좋아져서 금속공장에서 일하다 새끼손가락이 조금 잘렸던 일이요. 아주 조금만 더 운이 나빴다면 지금 밴드를 하는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혁 부산에서 상경을 망설이고 있던 중, 외국인 친구의 권유로 상경을 결심했던 일이에요. 27년동안 살던 익숙한 곳과 정든 사람들을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에 대한 기대감 역시 가득 차 있었죠. 제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수현 '사건'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2달째 아직 이사들어온 집에 인터넷을 달지 않고 있어요. 지금 하고있는 인터뷰에 관련 된 e-mail을 받고 저의 스마트폰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거의 끝냈을 무렵 버튼을 잘못눌러서 열심히 작성 했던 글이 다 날아가 버렸답니다. 저는 아직 풀터치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아서 터치로 긴 글을 작성하는건 너무 힘들어요..ㅠㅠ 진지하게 인터넷을 달까, 하고 현재 와이파이 빠방한 카페에 앉아 진지하게 생각중이랍니다!
4. 가장 기억에 남는 데이트는 언제인가요?
광수 내일이었으면 좋겠네요.
성혁 얼마 전이었어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시간을 내서 스테이크를 먹고 좋은 영화를 봤었죠. 스테이크도 적당히 익었고, 영화도 올 해 봤던 영화 중에 최고였습니다.
수현 엄마와의 짧았던 버스데이트요. 새 집으로 이사한 이후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신 적이 있어요. 저희집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언니네 집에 가기 위해 엄마와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출발을 했답니다. 마을버스는 홍대의 구석구석을 지나 갔고, 수없이 공연했던 클럽, 맛있는 빵집, 좋아하는 카페, 에너지 넘치는 길거리의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다음번에 엄마가 다시 오신다면 함께 홍대 거리를 손잡고 걸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난 것들도 많이 보여 드릴 거예요.
5.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인가요?
광수 올 여름 제비다방에서 밴드 <파라솔>과 함께 했던 공연이요. 좁은 무대위에서 알콩달콩 연주하는게 정말 재밌었고 또 우리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꼈던 공연이었어요.
성혁 저도 제비다방에서 했던 공연입니다!
수현 부산에서 공연을 했을 땐데요. 정규앨범 발매 후 제가 공연하는 모습을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봐주셨거든요. 그 공연 이후로 걱정보다는 응원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6.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누구인가요?
광수 얼마 전,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했었는데요, 그 공연에 와주신 세분의 팬이 기억에 남아요. 그 날 관객도 유난히 없었고 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거든요. 당연히 우리를 보러 와주신 분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공연 내내 안좋은 기분을 숨기지도 못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팬분들을 보고 스스로 굉장히 부끄러웠고 다시는 무대위에서 그러면 안 되겠다, 늘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멤버들과 다짐했었습니다.
성혁 올 해 초,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보러 광주에서 올라오신 분이 있었어요. 그 후로도 끊임없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지금도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물론 다른 팬분들이 덜 기억에 남는건 아니에요. 한 분, 한 분 꼽자면 너무 많아서 행복합니다.
수현 수줍게 네잎크로버를 건네던 소녀가 기억에 남아요. 저희 공연에 와서 수줍게 다가오더니 제 스마트폰에 우연히 발견했다며 네잎크로버를 코팅해서 넣어줬어요. 다소곳한 쪽지와 함께...! 아, 정말 이쁜거 있죠?!ㅎㅎ
7.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무엇인가요?
광수 <Joy Division>의 'Atmosphere'란 곡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본 영화 '컨트롤' 에서 Joy Division이라는 훌륭한 밴드를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곡은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에서 나온 노래입니다. 지금의 제 음악 취향으로 이끌어준 밴드와 곡이라 상당히 아끼고, 기분이 울적할 때 즐겨듣는 노래입니다.
성혁 '꿈'이에요. 상경을 결정한 후, 아주 복합미묘한 감정에서 쓴 곡입니다. 가장 오래 된 곡이기도하고 [밤의 악대] 앨범 전체의 모태가 된 곡이라 저에겐 가장 의미있는 곡입니다. 정말 단순하고 평범한듯 하다가도 의외로 비범하게 들리기도하는 아주 독특한 곡입니다.
수현 서울에 올라와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 속에서 들었던 [밤의 악대] 데모곡들 입니다. 그 순간만은 외롭지 않다고 느꼈어요. 좋아하는 곡으로 함께 멋지게 해 나갈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했거든요. 우옷+_+!
8.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or책은 무엇인가요?
광수 영화는 팀버튼 감독의 [배트맨 1편]. 저를 배트맨 덕후로 살게 한 시발점이 되었던 영화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1학년때 이 영화를 보고 집으로 걸어 가던 길에 부르스 웨인이 부모님을 잃는 장면이 떠올라 가로등 불 아래서 꼼짝 못했었던 추억이 있네요. 기억에 남는 책은 [그래픽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입니다. 개인적으로 글과 그림 모두 마스터 피스라고 생각해요.
성혁 영화는 <레오 까락스> '퐁네프의 연인들',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입니다.
수현 양철북. 하지만 아직 다 끝내지 못했어요....하하
9.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언제인가요?
광수 대학교 2학년 여름, 이성혁과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돈도, 아무 대책도 없이 갤로퍼 타고 떠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천리포인가, 만리포에서 락 페스티발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무작정 부산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서 취소됐다는 소식을 확인하고는 차에서 한숨 자고난 뒤 유랑했던 기억이 나네요.
성혁 24살 겨울, 혼자 떠난 부산-서울 도보 여행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인것 같지만 마음이 엄청 복잡하던 시기라 아무 생각 안하고 무작정 걷고 싶었어요.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정말 힘들고 절망적인 때여서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수현 20대 초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갔을 때 였어요. 호주에 가고 얼마 후, 커다란 농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친구와 둘이서 아주 깜깜하고 드넓은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맥주 한캔을 들고 흙밭을 밟고있었죠. 흙밭에 털썩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정말이지 우유가 뿌려진 듯한 은하수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울컥했었습니다. 1년간의 여행에서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0.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인가요?
광수 받았던 모든 손편지와 갓난아기 때 받아서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파란 웨건형태의 클래식 배트카!
성혁 2008년도 생일에 여자친구가 선물 해준 어쿠스틱 기타. 마호가니 색의 뚱뚱한 기타인데, 이 기타로 거의 대부분의 곡을 썼고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타입니다.
수현 받았던 선물들은 다 너무나도 소중해서 순위를 매길 수가 없군요. 그래서 최근에 제가 선물한 조카의 모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와하하하! 오랜만에 코바늘을 집어 들고 막 태어난 조카에게 모자를 떠서 선물했습니다. 도대체 갓 태어난 아가의 머리 크기는 얼마나 될지 가늠이 되질 않아 손바닥에 수없이 대 보면서 어설프게 완성을 했답니다.
Bass.정광수
Guitar&Vocal.이성혁
Drum.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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